같은 3,000MB/s급으로 광고되는 두 SSD가 실제로 갈라지는 지점은 SLC 캐시가 마르는 순간이다. 캐시가 살아 있는 동안 TLC와 QLC는 거의 같은 속도를 낸다. 캐시가 소진되면 TLC는 공개 측정 기준 300~1,500MB/s로 내려앉고, QLC는 50~150MB/s대까지 떨어진다. 제품 상세 페이지의 최대 속도 숫자에는 이 구간이 들어 있지 않다.

문제는 캐시가 마르는 지점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드라이브는 빈 공간을 SLC 캐시로 빌려 쓰는 동적 방식이라, 드라이브가 찰수록 캐시가 줄고 속도 절벽이 앞당겨진다. 공개된 속도 범위를 대입해 계산하면 같은 100GB 복사가 1분대에서 12분대까지 벌어진다.

낸드 패키지 표면을 확대한 매크로 컷

전압 칸을 8개로 나누느냐 16개로 나누느냐

낸드 셀 하나에 몇 비트를 넣느냐가 모든 차이의 출발점이다. 시놀로지의 정리대로 TLC는 셀당 3비트, QLC는 셀당 4비트를 담는다. 비트 수가 하나 늘면 구분해야 할 전압 상태는 2배가 된다. 3비트는 2³인 8단계, 4비트는 2⁴인 16단계다. 같은 전압 폭을 16칸으로 쪼개면 칸 사이 여유가 절반으로 줄고, 읽을 때 더 정밀하게 재야 하며 쓸 때 더 신중하게 밀어 넣어야 한다. 속도와 수명이 함께 내려가는 이유가 여기 있다.

같은 문서는 밀도가 높은 셀일수록 내구성이 낮다는 원칙을 명시한다. MLC가 TLC보다, TLC가 QLC보다 오래 버틴다는 서열이다. QLC의 P/E 사이클은 공개 자료 기준 1,000회 미만으로 분류된다.

SLC 캐시는 이 구조를 임시로 되돌리는 장치다. 팀그룹의 설명대로 TLC나 QLC 낸드의 일부 공간을 SLC처럼 1비트만 쓰도록 돌려서 빠르게 받아낸 뒤, 나중에 원래 모드로 옮겨 담는다. 전압 칸이 2개뿐이니 빠를 수밖에 없다. 대신 용량을 지불한다. QLC 영역을 SLC 모드로 쓰면 물리 용량 4GB가 캐시 1GB로 환산된다. 100GB짜리 캐시를 만들려면 400GB의 물리 공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항목TLCQLC
셀당 비트 수3비트4비트
구분해야 할 전압 상태8단계16단계
SLC 모드 전환 시 용량 환산물리 3GB → 캐시 1GB물리 4GB → 캐시 1GB
캐시 소진 후 쓰기 속도300~1,500MB/s50~150MB/s
P/E 사이클 등급QLC보다 높음1,000회 미만

옆판을 연 데스크톱 본체 내부

캐시가 끝나는 지점은 드라이브가 얼마나 찼느냐가 정한다

동적 SLC 캐시는 비어 있는 셀을 빌려 쓴다. 드라이브가 비어 있으면 캐시가 크고, 차 있으면 빌릴 셀이 없어 캐시가 쪼그라든다. 1TB 드라이브에서 빈 상태 60GB였던 캐시가 80% 찬 상태에서 15GB, 90% 찬 상태에서 6GB로 줄어드는 식이다. 벤치마크가 새 드라이브에서 좋게 나오고 1년 쓴 드라이브에서 나빠지는 이유가 이 축소에 있다.

공개된 속도 범위를 대입해 100GB 복사 시간을 계산해봤다. 캐시 구간 쓰기 3,000MB/s, 캐시 소진 후 TLC 900MB/s, QLC 120MB/s를 적용했고(각각 공개 측정 범위의 중간값), 계산 편의상 1GB를 1,000MB로 환산했다.

드라이브 사용률가정 캐시 크기(GB)TLC 100GB 복사QLC 100GB 복사격차(배)
비어 있음601분 4초5분 53초5.5
80% 사용151분 39초11분 53초7.2
90% 사용61분 46초13분 5초7.4

계산 과정은 단순하다. 90% 찬 QLC의 경우 캐시 6GB는 6,000÷3,000=2초 만에 통과하고, 남은 94GB가 94,000÷120=783초를 먹는다. 합쳐 785초, 평균 127MB/s다. 같은 조건의 TLC는 2초 + 94,000÷900=104초로 106초에 끝난다. 두 드라이브의 카탈로그 최대 속도는 똑같이 3,000MB/s대다.

SSD의 최대 속도는 캐시의 속도이고, 체감 속도는 캐시가 끝난 뒤의 속도다.

주목할 점은 TLC의 절벽이 완만하다는 것이다. 90% 찬 상태에서도 1분 46초로, 빈 상태 대비 66% 늘어나는 데 그친다. QLC는 5분 53초에서 13분 5초로 2.2배가 된다. TLC의 원래 속도는 감내할 만하고 QLC의 원래 속도는 그렇지 않다는 차이가 사용률이 올라갈수록 증폭된다.

모바일 저장장치의 규격별 복사 시간 계산은 UFS 5.0과 4.1의 대역폭을 비교한 글에서 같은 방식으로 다뤘다.

메인보드 슬롯에 M.2 드라이브를 꽂는 손

그래도 QLC가 합리적인 경우

공개 스펙 기준으로 QLC의 약점은 지속 쓰기와 내구성에 몰려 있다. 반대로 읽기 성능은 두 방식의 격차가 크지 않고, 같은 예산에서 용량은 확실히 더 확보된다. 따라서 쓰기 패턴이 어떤 모양이냐가 선택을 가른다.

짧게 끊어 쓰는 작업은 캐시 안에서 끝난다. 문서 저장, 웹 브라우징, 게임 실행처럼 몇 GB 단위로 쓰고 마는 패턴이라면 두 방식의 체감 차이는 거의 없다. 반대로 50GB짜리 영상 파일을 옮기거나 대용량 게임을 설치하는 순간 캐시를 넘어간다. 캠코더 소스를 통째로 옮겨 담는 작업, 백업 대상 드라이브, 가상머신 이미지를 굴리는 용도는 QLC가 가장 불리한 지점이다.

👍 QLC가 맞는 경우
  • 같은 값에 용량 우선 — 읽기 위주의 게임·미디어 보관용
  • 한 번에 쓰는 양이 수 GB 이하로 끊기는 작업 패턴
  • 사용률을 70% 아래로 유지할 수 있는 여유 용량 확보가 가능할 때
👎 TLC를 써야 하는 경우
  • 대용량 영상 편집·백업 등 지속 쓰기가 잦은 작업
  • 드라이브를 90% 가까이 채워 쓰는 습관
  • 부팅 드라이브 겸 작업 드라이브를 하나로 쓰는 구성

책상 위에 놓인 외장 드라이브와 케이블

살 때 확인할 항목

제품 페이지가 낸드 종류를 명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스펙 시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간접 단서를 순서대로 보는 편이 빠르다.

  • 지속 쓰기 속도 표기 — 최대 속도만 있고 캐시 소진 후 수치가 없다면 리뷰의 전체 채우기 그래프를 찾아본다
  • 같은 시리즈의 용량별 TBW — 용량 대비 TBW가 유독 낮으면 QLC일 가능성이 높다
  • DRAM 캐시 유무 — 낸드 종류와 별개 항목이며, 없으면(HMB 방식) 임의 접근에서 추가로 불리하다
  • 용량 선택 — 같은 모델이면 큰 용량이 캐시도 크고 병렬 채널도 많다. 1TB와 2TB의 지속 쓰기 표기를 나란히 비교한다
  • 여유 공간 계획 — 동적 캐시 구조상 사용률 70~80%를 상한으로 잡고 용량을 고른다
  • 보증 조건 — 기간과 TBW 중 먼저 도달하는 쪽에서 종료되므로 하루 쓰기량으로 환산한 수명을 먼저 계산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