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TB SSD의 보증 쓰기량(TBW)이 600TB라면, 5년 보증을 쓰기량으로 먼저 소진하는 데 필요한 속도는 하루 329GB다. 문서·웹·일반 게임 위주 PC의 하루 기록량은 보통 그 100분의 1 수준이고, 그 속도로는 600TB를 채우는 데 80년이 넘게 걸린다. 개인용 SSD에서 먼저 끝나는 쪽은 거의 언제나 쓰기량이 아니라 기간이다.

그런데도 TBW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보증 문구 자체에 있다. 삼성전자 SSD 제한적 보증은 "명시된 기간 또는 TBW 중 더 먼저 도래하는 것을 기준으로 보증이 적용된다"고 못 박는다. 영상 편집 캐시나 가상머신 로그처럼 하루 수백 GB가 오가는 용도에서는 이 순서가 뒤집힌다.

메인보드 M.2 슬롯에 모듈을 끼우는 손 클로즈업

TBW는 무엇을 보증하는 숫자인가

삼성반도체 기술 블로그는 TBW를 "SSD 제품의 수명을 알려주는 수치로, 기간별 기록 가능한 용량"으로 정의하고, 하루 100GB를 10년간 기록하면 365TBW가 된다는 예시를 든다. 100GB × 365일 × 10년 = 365,000GB, 곧 365TB라는 단순 곱셈이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고장 시점이 아니라 보증 종료 시점이라는 점이다. TBW를 넘겼다고 드라이브가 그날 멈추지는 않는다. 반대로 TBW에 한참 못 미쳐도 컨트롤러 불량이면 죽는다. TBW는 제조사가 "이 쓰기량까지는 책임진다"고 선을 그은 계약 조건에 가깝다.

같은 스펙 표기라도 배터리의 사이클 표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배터리는 정해진 사이클을 넘기면 용량이 실제로 줄지만, SSD는 예비 블록이 남아 있는 한 표기 용량이 그대로 유지된다. 표기 방식의 차이는 배터리 800사이클 80% 기준의 의미와 나란히 놓고 보면 분명해진다.

용량이 2배면 TBW도 2배 — DWPD로 바꾸면 전부 같다

삼성 보증 페이지의 870 EVO·980 PRO·990 PRO는 용량별 TBW가 정확히 비례한다. 이를 하루 허용 쓰기량과 DWPD(하루에 드라이브 전체 용량을 몇 번 덮어쓸 수 있는가)로 환산하면 계단이 사라진다. 5년(1,825일) 기준으로 계산한 값이다.

용량보증 TBW(TB)하루 허용 기록량(GB)DWPD(회)
250GB150820.33
500GB3001640.33
1TB6003290.33
2TB1,2006580.33
4TB2,4001,3150.33

오른쪽 끝 열이 0.33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용량을 키우면 절대 쓰기량 여유는 정직하게 늘지만, 드라이브를 몇 번 덮어쓸 수 있느냐는 기준으로는 250GB나 4TB나 동일하다. "용량이 크면 오래 간다"는 말은 앞의 기준에서만 참이다. 4TB를 사서 4TB를 매일 채우는 작업을 한다면 250GB짜리와 똑같은 속도로 보증을 소진한다.

밤 시간 한국 가정 책상 위 측면 패널을 연 데스크톱 PC

하루 20GB를 쓰면 몇 년인가

1TB 600TBW 제품을 기준으로, 하루 기록량별 소진 기간을 계산했다. 600TB는 600,000GB이므로 소진 일수는 600,000을 하루 기록량으로 나눈 값이다.

하루 기록량(GB)소진까지 걸리는 날수환산 연수5년 보증과 비교
1060,000164.4년기간이 먼저 끝남
2030,00082.2년기간이 먼저 끝남
5012,00032.9년기간이 먼저 끝남
1006,00016.4년기간이 먼저 끝남
2003,0008.2년기간이 먼저 끝남
3291,8255.0년정확히 동시 — 손익분기
5001,2003.3년TBW가 먼저 끝남
1,0006001.6년TBW가 먼저 끝남

손익분기는 하루 329GB다. 이 선을 넘는 작업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세어보면 판단이 쉬워진다. 100GB짜리 게임을 매일 한 번 다시 내려받으면 100GB, 4K 영상 프로젝트의 중간 렌더 파일이 하루 200~300GB를 오가면 그것만으로 선에 닿는다. 반대로 문서·브라우징·간헐적 게임 설치는 하루 10~20GB를 넘기기 어렵다.

TBW는 "언제 고장 나는가"가 아니라 "언제 보증이 끝나는가"를 말한다. 개인용 PC에서 그 선을 먼저 넘는 쪽은 거의 언제나 5년이라는 시간이다.

브랜드가 달라도 숫자가 같은 이유

공개된 제조사 스펙을 나란히 놓으면 TBW가 제품 우열을 가르는 지표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스토리지리뷰가 정리한 WD_BLACK SN850X의 용량별 내구성은 삼성 990 PRO와 소수점 없이 겹친다.

용량삼성 990 PRO TBW(TB)WD_BLACK SN850X TBW(TB)보증기간
1TB600600양쪽 모두 5년
2TB1,2001,200양쪽 모두 5년
4TB2,4002,400양쪽 모두 5년

두 제조사가 서로 베낀 것이 아니라, 소비자용 TLC 드라이브의 보증 정책이 사실상 0.33 DWPD라는 같은 관행에 수렴한 결과다. 그래서 TBW 수치만 비교해 제품을 고르는 것은 의미가 크지 않다. 같은 값이면 차이는 컨트롤러 발열, SLC 캐시 소진 후 속도, 랜덤 성능 쪽에서 갈리고, 그 부분은 Gen4와 Gen5의 속도 차이가 체감되지 않는 조건에서 따로 짚었다.

왜 하필 0.33인가 — 셀이 견디는 횟수

디지털포스트는 낸드 셀의 재기록 가능 횟수(P/E 사이클)를 SLC 약 10만 회, MLC 약 3,000회, TLC 약 1,000회로 정리한다. 소비자용 NVMe SSD 대부분이 쓰는 TLC 기준으로 계산하면 1TB 드라이브의 이론적 총 기록량은 1,000회 × 1TB = 1,000TB다.

보증 TBW 600TB는 그 이론치의 60%에 해당한다. 나머지 40%가 어디로 갔는지가 이 숫자의 정체다. 컨트롤러는 특정 셀만 닳지 않도록 전체 셀에 기록을 분산하는 웨어 레벨링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호스트가 요청한 양보다 실제 낸드에 기록되는 양이 더 많아진다. 여기에 불량 블록 대체용 예비 영역과 제조사의 안전 마진이 더해져 실제 보증치는 이론치보다 크게 낮게 잡힌다.

수명이 다한 뒤의 동작도 제품마다 다르다. 같은 기사는 일부 모델이 수명 종료 시 데이터를 읽어내는 데 문제없는 읽기 전용 모드로 전환된다고 설명한다. 백업이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인식이 끊기는 상황과, 읽기만 되는 상태로 남는 상황은 복구 난도가 전혀 다르다.

서울 원룸에서 열어둔 PC 케이스 내부를 살펴보는 20대 여성

지금까지 얼마나 썼는지 확인하는 법

삼성반도체 기술 블로그는 자사 SSD의 상태를 매지션(Magician) 소프트웨어에서 정상·보통·위험 3단계로 확인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제조사 도구가 없는 제품이라면 NVMe 표준 SMART 항목을 보면 된다. 누적 호스트 기록량(Data Units Written)과 수명 사용률(Percentage Used), 남은 예비 영역(Available Spare) 세 가지가 핵심이다.

계산은 나눗셈 하나다. 누적 기록량을 보증 TBW로 나누면 소진율이 나오고, 소진율을 경과 연수로 나누면 연간 소진 속도가 나온다. 구입한 지 2년 된 1TB 제품의 누적 기록량이 40TB라면 소진율은 40 ÷ 600 = 6.7%, 연간 3.3%다. 이 속도가 유지되면 TBW를 다 쓰는 시점은 지금부터 28년 뒤가 된다.

책상 위 정전기 방지 봉투와 나사, 드라이버가 놓인 모습

용량을 올려야 하는 사람, 올릴 필요 없는 사람

TBW 때문에 용량을 한 단계 올릴 필요가 있는 쪽은 하루 기록량이 100GB를 넘는 작업을 상시로 돌리는 경우다. 4K 이상 영상 편집의 중간 캐시, 매일 재설치가 반복되는 대용량 게임 라이브러리, 가상머신 이미지와 데이터베이스 로그가 여기에 해당한다. 2TB로 올리면 하루 허용치가 658GB로 두 배가 되고, 같은 작업량 기준 보증 소진 속도는 절반이 된다.

반대로 문서·웹·일반 게임 위주라면 TBW를 이유로 용량을 올릴 근거는 없다. 이 조건에서 용량을 올려야 하는 진짜 이유는 수명이 아니라 여유 공간이다. 드라이브가 가득 찰수록 컨트롤러가 웨어 레벨링에 쓸 빈 블록이 줄고, 같은 양을 기록해도 내부 이동이 늘어난다. 수명 관리 관점에서는 TBW 숫자를 재는 것보다 빈 공간을 남겨두는 쪽이 실효가 크다.

구매 전 확인할 것

  • 제품 상세 페이지의 보증 문구가 "기간 또는 TBW 중 먼저 도래" 형식인지 — 기간만 적힌 표기는 조건이 생략된 것이다
  • 같은 모델명이라도 용량별 TBW가 다르다 — 리뷰에 인용된 1TB 수치를 500GB 제품에 적용하면 두 배로 오산한다
  • 하루 기록량 추정치 — 게임 재설치·영상 캐시·백업 주기를 GB 단위로 세어 329GB(1TB 기준) 선과 비교한다
  • 현재 쓰는 드라이브의 누적 기록량과 수명 사용률 — 교체 시점 판단의 유일한 실측치다
  • 수명 종료 시 읽기 전용 전환을 지원하는지 — 지원하지 않으면 백업 주기를 더 짧게 잡아야 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