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펌프 건조기의 1회 소비전력량은 1kWh 안팎이고, 여기에 붙는 전기요금은 250원 수준이다. 정격소비전력으로 계산하면 이 숫자가 나오지 않는다. 건조기 카탈로그에 적힌 정격소비전력은 압축기와 히터가 동시에 최대로 돌 때의 순간 값이고, 실제 건조 사이클은 온도가 올라간 뒤 압축기가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끝난다. 그래서 요금 계산에 써야 할 숫자는 정격소비전력이 아니라 표준코스 1회 소비전력량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 값이 제품마다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이 같은 급의 히트펌프 건조기 7종을 표준코스로 측정했을 때 1회 소비전력량은 절반 용량에서 958Wh~1,593Wh, 최대 용량에서 1,576Wh~2,442Wh로 벌어졌다. 방식이 같고 용량이 같아도 요금이 1.5~1.7배 차이 난다는 뜻이다.

정격소비전력으로 계산하면 왜 틀리나

히트펌프 건조기는 공기를 데워 옷의 수분을 빼앗고, 습해진 공기를 증발기에서 식혀 물을 응축시킨 뒤 다시 데워 순환시킨다. 배기로 열을 버리지 않고 회수해 쓰는 구조라 소비전력량이 낮다. 대신 압축기가 목표 온도에 도달하면 출력을 줄이거나 멈추기 때문에, 건조 3시간 내내 정격소비전력이 흐르는 일은 없다.

계산에 정격을 쓰면 오차가 어느 정도인지 바로 확인된다. 정격소비전력 900W 제품을 3시간 돌린다고 보면 2.7kWh가 나오는데, 실제 측정값은 절반 용량에서 1kWh 안팎이다. 두세 배를 과대 계산하게 된다. 반대로 통풍식·히터식은 히터가 켜져 있는 동안 거의 정격에 가깝게 소비하므로 정격 기준 추정이 실제에 더 가깝다. 같은 계산법을 두 방식에 그대로 적용하면 방식 간 비교 자체가 왜곡된다.

그래서 비교의 출발점은 에너지소비효율등급 라벨이다. 에너지신문에 따르면 정격소비전력 3,000W 이하 의류건조기는 에너지소비효율 등급표시 대상으로 지정돼, 제조·수입사가 공인시험기관 측정값을 한국에너지공단에 신고해야 한다. 표준건조용량 1kg 이상 20kg 이하 회전식 제품이 대상이며 통기형과 콘덴서형이 모두 포함된다. 즉 히트펌프든 히터식이든 같은 시험 방법으로 측정된 1회 소비전력량이 라벨에 있고, 그 숫자끼리는 직접 비교가 된다.

먼지가 쌓인 건조기 응축기 필터를 꺼내 든 손

같은 히트펌프 10kg인데 왜 1.7배 벌어지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이 전한 한국소비자원 비교시험은 9~10kg 용량 히트펌프 건조기 7종을 대상으로 안전성·건조도·건조시간·에너지소비량·소음을 측정했다. 안전성에서는 전 제품 이상이 없었지만 성능 지표는 제품별로 갈렸다.

측정 항목절반 용량최대 용량
1회 소비전력량 범위(Wh)958 ~ 1,5931,576 ~ 2,442
제품 간 배수최대 1.7배최대 1.5배
건조시간 최대 격차58분33분
연간에너지비용 최대 격차2만2,000원2만9,000원

여기서 눈여겨볼 조합은 건조시간과 소비전력량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절반 용량에서 가장 오래 걸린 제품은 2시간 42분, 최대 용량에서 가장 빨리 끝난 제품은 2시간 59분이었는데 이 빠른 제품은 건조도가 91%로 미흡 판정을 받았다. 건조가 덜 된 상태로 사이클을 끝내면 소비전력량도 낮게 찍힌다. 소비전력량만 보고 고르면 덜 마르는 제품을 효율 좋은 제품으로 오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라벨의 1회 소비전력량은 건조도와 짝으로만 읽어야 하는 숫자다. 같은 조건에서 건조도가 100%를 넘긴 제품끼리 비교했을 때의 소비전력량 차이가 진짜 효율 차이다.

소비전력량이 낮은 제품이 효율이 좋은 제품은 아니다. 덜 말리고 끝낸 제품도 소비전력량은 낮게 나온다.

아파트 복도 벽의 전기 계량기와 분전반 클로즈업

1회 요금은 어떻게 계산하나

소비전력량에 곱할 단가는 평균 단가가 아니라 그 집이 도달해 있는 구간의 한계 단가다. 주택용 전력은 누진제여서 추가로 쓰는 1kWh는 언제나 가장 높은 구간의 단가로 계산된다. 한국전력 주택용 저압 요금표의 전력량요금은 1단계 120원, 2단계 214.6원, 3단계 307.3원이고, 여기에 기후환경요금 kWh당 9원과 연료비조정요금 kWh당 5원이 더해진다. 그 합에 부가가치세 10%와 전력산업기반기금 3.2%가 붙어 실부담 한계 단가가 된다.

계산하면 1단계 151.7원, 2단계 258.8원, 3단계 363.7원이다. 구간 경계는 하계(7~8월) 300kWh·450kWh, 나머지 달은 200kWh·400kWh다. 이 단가를 앞의 측정 범위에 대입한 결과가 아래 표다.

1회 소비전력량(kWh)1단계 151.7원 기준(원)2단계 258.8원 기준(원)3단계 363.7원 기준(원)
0.96 (절반 용량 최저)146248349
1.20182311436
1.59 (절반 용량 최고)241411578
2.44 (최대 용량 최고)370631887

1회 요금이 수백 원이라 부담이 작아 보이지만, 누적하면 성격이 달라진다. 주 3회, 연 156회를 돌린다고 보고 2단계 단가를 적용하면 아래와 같다.

1회 소비전력량(kWh)연간 전력량(kWh)2단계 기준 연간 요금(원)3단계 기준 연간 요금(원)
0.9615038,75854,468
1.2018748,44768,085
1.5924864,19390,212
2.4438198,510138,439

절반 용량 최저와 최대 용량 최고 사이의 간격이 2단계 기준으로 연 약 6만원이다. 여기에 더 중요한 함정이 있다. 건조기가 만드는 연 150~380kWh는 그 자체로 누진 구간을 밀어 올린다. 월 사용량이 190kWh인 집이 건조기로 월 20kWh를 더하면 2단계로 넘어가면서, 이미 쓰던 전력의 초과분에도 더 높은 단가가 적용된다. 매트류의 한계 단가 계산을 다룬 전기장판·온수매트 전기요금 계산법과 같은 구조다.

밤에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는 30대 남성

용량과 등급 중 어느 쪽이 요금을 더 움직이나

표를 다시 보면 절반 용량 1.59kWh 제품과 최대 용량 1.58kWh 제품의 요금은 같다. 즉 요금을 결정하는 것은 표시 용량이 아니라 한 번에 얼마를 넣고 몇 번 돌리는가다. 10kg짜리에 5kg만 넣어 두 번 돌리면 절반 용량 사이클 두 번이 되어 1.9~3.2kWh를 쓰고, 한 번에 몰아 넣으면 최대 용량 사이클 한 번으로 1.6~2.4kWh에서 끝난다. 용량을 여유 있게 고른 뒤 사이클 수를 줄이는 쪽이 계산상 유리하다.

반대로 용량을 키울수록 본체 가격과 설치 공간 요구가 올라간다. 연간 요금 차이가 6만원 수준이라면 회수 기간을 계산해볼 여지가 있다. 방식별 유지비가 어떻게 갈리는지는 가습기 방식별 연간 유지비 비교에서 같은 방법으로 정리한 바 있다.

이런 경우에 맞고, 이런 경우엔 기다려도 된다

  • 주 3회 이상 돌리는 집 — 연간 요금 차이가 누적되므로 라벨의 1회 소비전력량을 모델별로 비교할 값이 있다. 등급이 같아도 라벨 수치는 다르다
  • 월 전력 사용량이 구간 경계 근처인 집 — 190kWh, 390kWh 근처라면 건조기 추가만으로 한계 단가가 100원 이상 뛴다. 요금 계산을 3단계 열로 해야 한다
  • 베란다·비난방 공간에 놓을 계획 — 히트펌프는 주변 공기의 열을 회수하는 방식이라 저온 환경에서 조건이 달라진다. 제조사가 명시한 사용 환경 온도 범위를 확인할 것
  • 주 1회 이하로 쓸 집 — 연간 요금 차이가 2만원 아래로 줄어든다. 이 경우 요금보다 건조도·소음 지표를 우선으로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 지금 쓰는 제품이 등급표시 시행 이전 모델 — 라벨 수치가 없어 비교 기준이 없다. 실사용 전력량을 콘센트형 전력계로 측정한 뒤 표에 대입하는 방법이 남는다

선반에 개어 쌓아둔 수건과 면 티셔츠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