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에너지 라벨에 적힌 소비전력량과 물 사용량은 1회 세탁 기준이다. 주 5회 돌리는 집이라면 연 260회를 곱해야 연간 비용이 나온다. 이 환산을 거치면 1회 소비전력량 100Wh 차이는 연 5,580원, 물 사용량 20L 차이는 연 6,396원이 된다. 카탈로그에서 스쳐 지나가는 두 자리 숫자가 연간으로는 만원 단위로 벌어진다는 뜻이다.

표시 방식 자체도 바뀐 지 오래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전기세탁기의 라벨은 종전의 '1kg당 소비전력량'에서 최대용량을 표준코스로 세탁할 때 쓰는 '1회 세탁시 소비전력량'으로 표기가 바뀌었다. 라벨에는 1회 세탁시 소비전력량, 1회 세탁시 물사용량, 1회 세탁시 CO2 배출량, 연간에너지비용, 소비효율등급이 함께 표시된다.

가전 에너지 라벨 모서리 클로즈업 — 초점이 나가 글자는 읽히지 않는다

라벨의 다섯 숫자 중 실제로 돈을 가르는 것

등급 표시만 보고 고르면 놓치는 것이 있다. 등급은 같은 용량대 안에서의 상대 순위이고, 청구서에 찍히는 금액은 절대값인 1회 소비전력량과 1회 물사용량에서 나온다. 9kg 1등급과 21kg 1등급의 1회 소비전력량은 같지 않다.

라벨의 '연간에너지비용'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제조사가 가정한 연간 세탁 횟수와 전기요금 단가가 우리 집과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 요금은 한국전력 주택용 저압 요금표를 대입해야 한다. 한국전력 요금표 기준 주택용 저압 전력량요금은 기타계절 200kWh 이하 120.0원, 201~400kWh 214.6원, 400kWh 초과 307.3원이다. 세탁기가 붙는 지점은 대개 가구 사용량 위쪽 구간이므로, 아래 계산에서는 2단계 단가인 214.6원/kWh를 썼다.

적용 범위도 라벨을 읽기 전에 알아둘 만하다. 한국에너지공단 효율관리제도는 일반세탁기를 KS C IEC 60456 기준 표준세탁용량 2kg 이상 25kg 이하의 가정용 수직축 자동세탁기로, 드럼세탁기를 같은 용량 범위의 수평 드럼식으로 구분한다. 통돌이와 드럼의 등급 기준표가 애초에 따로 있다는 뜻이라, 등급끼리 비교하는 것은 통돌이와 드럼 사이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등급은 같은 부류 안의 순위이고, 청구서는 절대값으로 찍힌다. 비교해야 할 숫자는 등급이 아니라 1회 소비전력량과 1회 물사용량이다.

1회 소비전력량, 연간 요금으로 얼마인가

주 5회 세탁을 가정해 연 260회로 환산했다. 전력량요금은 214.6원/kWh, 기본요금과 기후환경요금·부가세는 제외한 순수 증분이다.

1회 소비전력량 (Wh)연간 소비전력량 (kWh)연간 전기요금 (원)300Wh 대비 차액 (원)
30078.016,739-
450117.025,108+8,369
600156.033,478+16,739
750195.041,847+25,108
900234.050,216+33,477

기울기를 하나만 외운다면 이것이다. 1회 소비전력량 100Wh 차이 = 연간 26kWh = 5,580원. 냉수 표준코스만 쓰는 집이라면 1회 소비전력량이 표의 아래쪽까지 갈 일이 드물고, 온수·삶음 코스를 상시 쓰는 집이라면 라벨 값보다 더 나온다. 라벨의 표준코스가 온수인지 냉수인지는 등급 기준 적용 범위에서 갈리므로 제품 사양표에서 확인할 항목이다.

세탁기 드럼 내부 클로즈업 — 1회 세탁 소비전력량이 만들어지는 곳

건조 기능이 붙은 일체형이라면 전력 소비의 무게중심은 세탁이 아니라 건조 쪽으로 옮겨간다. 건조 방식별 소비전력 차이는 건조기 1회 요금 표기의 조건에서 따로 정리했다.

물 사용량 20L 차이는 연간 얼마인가

전기만 보다가 놓치는 쪽이 수도요금이다. 서울 기준 가정용 수도요금은 아리수 요율표의 상수도 580원/㎥에 하수도 사용료 480원/㎥, 물이용부담금 170원/㎥를 더해 1㎥당 1,230원으로 잡힌다. 같은 연 260회를 곱한 결과다.

1회 물사용량 (L)연간 사용량 (㎥)연간 수도요금 (원)40L 대비 차액 (원)
4010.412,792-
6015.619,188+6,396
8020.825,584+12,792
10026.031,980+19,188
12031.238,376+25,584

여기서 나오는 기울기는 1회 물사용량 20L 차이 = 연간 5.2㎥ = 6,396원이다. 앞의 전기 기울기(100Wh = 5,580원)와 나란히 놓으면 순서가 뒤집힌다. 통돌이가 드럼보다 물을 30~40% 더 쓴다는 가전 유통 자료의 범위를 대입해보면, 드럼 1회 60L 기준으로 통돌이는 78~84L가 되고 차이는 18~24L다. 금액으로는 연 5,756~7,675원. 같은 조건에서 두 방식의 1회 소비전력량 격차가 100Wh 안쪽이라면, 연간 총액을 가르는 쪽은 전기가 아니라 물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베란다에서 양동이에 받아지는 수돗물 — 1회 물 사용량을 수도요금으로 환산하는 장면

다만 이 계산은 냉수 표준코스를 전제로 한다. 드럼의 표준코스가 온수라면 물을 데우는 전력이 붙어 전기 쪽 격차가 커지고 순서는 다시 뒤집힐 수 있다. 공개된 스펙 기준으로 판단하려면 두 제품의 라벨에서 1회 소비전력량과 1회 물사용량을 각각 뽑아 위 두 표에 대입하는 것이 유일하게 일관된 방법이다. 물을 데우는 전력이 요금을 지배하는 구조는 식기세척기에서 건조 방식이 요금을 가르는 구조와 같다.

1등급이 희소해진 이유 — 78.0에서 75.0으로

매장에서 1등급 제품이 예전만큼 흔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2~8kg 드럼세탁기의 1등급 기준은 78.0Wh/kg에서 75.0Wh/kg으로 상향됐고, 1등급 비중은 29.2%에서 7.8%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같은 개정에서 김치냉장고는 64.4%에서 12.1%로, 전기냉난방기는 19.5%에서 9.6%로 1등급 비중이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됐다.

이 3.0Wh/kg의 상향이 요금으로는 얼마인지 8kg 기준으로 환산해봤다.

구분지표 (Wh/kg)8kg 1회 소비전력량 (Wh)연간 소비전력량 (kWh)연간 전기요금 (원)
종전 1등급 기준선78.0624162.2434,817
현행 1등급 기준선75.0600156.0033,478
차액3.0246.241,339

연 1,339원이다. 기준선을 넘느냐 마느냐로 등급 숫자는 1과 2로 갈리지만, 요금 차이는 커피 두 잔 값이라는 뜻이다. 등급 라벨 한 칸에 지불하는 가격 프리미엄이 몇만원을 넘는다면 회수 기간이 수년 단위로 늘어난다. 세계일보는 이번 개정으로 연간 25.5GWh, 세종시 한 달 전력 사용량의 7.1%에 해당하는 절감을 정부가 예상했다고 전했다. 개별 가구 단위와 국가 단위에서 이 숫자의 의미가 다르게 읽히는 지점이다.

같은 보도는 시행 3년 뒤와 6년 뒤에 3~20% 수준의 추가 상향이 계획돼 있다고 전한다. 지금 1등급인 제품이 몇 년 뒤 기준으로는 2등급 구간에 들어간다는 뜻이므로, 중고 매각이나 재구매 시점의 등급 표기는 구매 시점 기준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해질녘 동네 가전 매장 외경 — 세탁기 구매 단계를 상징하는 이미지

👍 등급을 우선할 만한 경우
  • 세탁 횟수가 많아 연간 260회를 훌쩍 넘는 가구 — 기울기가 그대로 곱해진다
  • 온수·삶음 코스 사용 비중이 높아 전력 소비가 라벨 값보다 커지는 경우
  • 전기 사용량이 이미 3단계(400kWh 초과, 307.3원/kWh) 구간에 걸쳐 있는 가구
👎 등급 프리미엄이 잘 회수되지 않는 경우
  • 1~2인 가구로 주 2~3회만 돌리는 경우 — 연간 격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
  • 1등급과 2등급의 가격 차이가 연간 차액의 10배를 넘는 경우
  • 물 사용량은 그대로인데 소비전력량만 낮춘 모델 — 총액 기여도가 작다

이런 사람에게 맞는다 / 이런 사람은 기다려라

등급 대신 라벨의 두 절대값을 뽑아 위 표에 대입하는 것이 구매 판단의 기본형이다. 후보 두 대의 1회 소비전력량 차이 ÷ 100 × 5,580원1회 물사용량 차이 ÷ 20 × 6,396원을 더하면 연간 차액이 나오고, 가격 차이를 이 값으로 나누면 회수 기간이 나온다. 회수 기간이 제품 사용 연한보다 길면 등급 프리미엄은 지불할 이유가 없다.

  • 지금 사도 되는 경우 — 후보 간 연간 차액 대비 가격 차이가 3~4년 안에 회수되고, 세탁 횟수가 주 5회 이상인 가구.
  • 등급을 한 칸 내려도 되는 경우 — 주 2~3회 세탁에 냉수 코스 위주. 연간 차액이 만원 안쪽이면 등급보다 용량·설치 조건이 우선이다.
  • 기다려도 되는 경우 — 시행 3년·6년 뒤 추가 상향이 예고돼 있어 기준 개정 직후에는 1등급 모델의 가격 프리미엄이 크게 잡히는 경향이 있다. 급하지 않다면 개정 시점을 피해 구간 중반에 고르는 편이 유리하다.
  • 계산 전에 확인할 것 — 표준코스가 온수인지 냉수인지, 표시된 용량이 표준세탁용량인지. 이 둘이 다르면 두 제품의 라벨 값은 애초에 같은 조건이 아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