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W를 견디는 USB-C 케이블이 데이터는 480Mbps밖에 못 내는 경우가 있다. 고장이 아니라 정상 제품이다. USB-C는 커넥터 모양의 이름일 뿐이고, 전력 등급과 데이터 속도 등급은 케이블 안에서 서로 다른 배선이 담당하는 별개의 규격이기 때문이다. 공개된 규격 기준으로 이 둘은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보장하지 않는다.
같은 굵기, 같은 검은 피복, 같은 커넥터를 쓴 케이블이 3000원짜리와 4만원짜리로 갈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겉으로 구분할 수 없으니 표기를 읽는 수밖에 없는데, 표기에서 봐야 할 숫자는 세 개다. 속도(Gbps), 전력(W), 그리고 길이(m).

같은 100GB를 옮기는 데 규격별로 얼마나 걸리나
속도 표기는 초당 비트(bps)이고 파일 크기는 바이트(B)라 체감이 잘 안 온다. 100GB짜리 영상 폴더를 옮긴다고 놓고 환산하면 차이가 분 단위로 드러난다. 100GB는 800,000Mb이므로 표기 속도로 나누면 이론 소요 시간이 나온다.
| 규격 표기 | 속도(Gbps) | 100GB 이론 전송 시간 | 주 용도 |
|---|---|---|---|
| USB 2.0 | 0.48 | 27분 47초 | 충전 전용·키보드·마우스 |
| USB 5Gbps | 5 | 2분 40초 | 외장 HDD·일반 SSD |
| USB 10Gbps | 10 | 1분 20초 | 고속 외장 SSD |
| USB 20Gbps | 20 | 40초 | 고속 SSD·듀얼 디스플레이 |
| USB4 40Gbps | 40 | 20초 | 도킹·8K 출력·NVMe 외장 |
표는 이론값이라 실제로는 프로토콜 오버헤드와 저장장치 속도 때문에 60~70% 수준에서 걸린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USB 2.0 케이블로 100GB를 옮기면 30분 가까이 걸리고, 40Gbps 케이블이면 커피 물 끓는 시간에 끝난다. Plugable이 정리한 규격 표기 기준으로 USB-IF는 이제 Gen 1·Gen 2x2 같은 세대 표기 대신 속도 숫자를 그대로 이름에 쓰도록 바꿨다. 포장에 "USB 10Gbps"라고 적혀 있으면 그게 곧 등급이다.
문제는 충전 전용으로 팔리는 케이블 상당수가 데이터 라인을 최소한만 넣어 USB 2.0에 머문다는 점이다. 사까마까의 규격 정리에 따르면 3000원 이하 저가 케이블은 대부분 USB 2.0이며, 고속 규격 케이블은 내부 배선이 많아 눈에 띄게 굵고 뻣뻣하다. 굵기는 참고 신호일 뿐 판정 기준은 아니지만, 얇고 낭창낭창한 케이블이 40Gbps인 경우는 사실상 없다.

60W·100W·240W를 가르는 것은 e-marker 칩 하나
전력 쪽 구조는 더 단순하다. USB-C 케이블이 3A를 넘겨 흘리려면 케이블 안에 e-marker라는 인식용 칩이 들어 있어야 한다. 충전기와 기기는 이 칩에 저장된 정보를 읽어 케이블이 감당할 수 있는 전류를 확인하고, 칩이 없으면 규격상 20V·3A, 즉 60W까지만 협상한다. 아무리 좋은 240W 충전기를 물려도 케이블이 막고 있으면 60W다.
| 케이블 등급 | e-marker | 최대 전압·전류 | 최대 전력(W) |
|---|---|---|---|
| 기본 케이블 | 없음 | 20V·3A | 60 |
| 5A 케이블(PD 3.0 SPR) | 필수 | 20V·5A | 100 |
| EPR 케이블(PD 3.1) | 필수 | 28V·5A | 140 |
| EPR 케이블(PD 3.1) | 필수 | 36V·5A | 180 |
| EPR 케이블(PD 3.1) | 필수 | 48V·5A | 240 |
전류는 5A에서 더 올라가지 않는다. 100W에서 240W로 뛰는 방법은 전압을 20V에서 48V까지 올리는 것뿐이고, 이 확장 구간을 EPR(Extended Power Range)이라 부른다. ZX Power의 규격 설명에 따르면 EPR 케이블은 PD 3.1을 따르며 기존 SPR 100W 대비 약 2.4배 전력을 처리한다. USB-IF 인증 프로그램은 EPR 케이블에 240W 표기를 요구한다.
여기서 앞의 문장으로 돌아온다. e-marker는 전력 정보와 속도 정보를 각각 따로 담는다. 240W를 선언하면서 데이터는 USB 2.0이라고 선언하는 케이블은 규격 위반이 아니라 설계 선택이다. 노트북 충전만 할 케이블에 40Gbps 배선을 넣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충전기 쪽 숫자를 고르는 기준은 100W·240W와 PPS를 정리한 글에서 따로 다뤘다.

40Gbps 케이블이 대부분 0.8m인 이유
고속 케이블을 사려다 길이 선택지가 갑자기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도 규격 문제다. 신호 주파수가 올라갈수록 구리선에서의 감쇠가 커져서, 전자 부품 없이 배선만으로 만든 패시브 케이블은 일정 길이를 넘기면 규격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 규격 | 패시브 최대 길이(m) | 더 길게 하려면 |
|---|---|---|
| USB 5Gbps | 2.0 | 대체로 불필요 |
| USB 10Gbps | 1.0 | 액티브 케이블 |
| USB 20Gbps | 1.0 | 액티브 케이블 |
| USB4 40Gbps | 0.8 | 리타이머 내장 액티브 케이블 |
액티브 케이블은 안에 리타이머 IC를 넣어 신호를 중간에 재생성한다. 그래서 1m를 넘겨도 40Gbps가 유지되지만 가격이 올라가고, 일부 액티브 케이블은 단방향 설계라 연결 방향을 타기도 한다. ACT가 판매하는 USB-IF 인증 USB4 40Gbps·240W 케이블의 길이가 0.8m인 것도 이 제약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즉 "책상 뒤로 돌려 2m로 쓰겠다"와 "40Gbps를 쓰겠다"는 대체로 같이 갈 수 없는 요구다. 도킹 스테이션을 모니터 뒤에 두고 긴 케이블로 끌어오는 배치를 계획했다면, 규격을 낮추든 액티브 케이블 비용을 감수하든 둘 중 하나다. 썬더볼트 계열과의 관계는 USB4와 썬더볼트5의 레인 구조를 비교한 글에서 정리했다.

포장에서 확인할 세 줄
공개된 규격 기준으로 케이블 표기에서 실질적인 정보는 세 줄이면 끝난다. 첫째 속도 표기(USB 2.0 / 5Gbps / 10Gbps / 20Gbps / 40Gbps), 둘째 전력 표기(60W / 100W / 240W 또는 3A / 5A), 셋째 길이. 이 셋이 모두 적혀 있지 않은 제품은 표기하지 않은 항목이 최저 등급이라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특히 속도 표기가 없는 "고속충전 케이블"은 USB 2.0일 가능성이 높다.
인증 여부는 USB-IF 로고와 제품 표면의 각인으로 확인한다. 다나와의 제품 목록에서도 같은 240W·5A 제품이 USB 2.0 480Mbps와 USB4 40Gbps로 나뉘어 표기되는 것을 볼 수 있다. 판매 페이지가 두 숫자를 함께 적어두었다면 그 자체가 신뢰 신호다.
이런 조합이면 이 등급
- 노트북 충전만 — 100W 또는 240W, 속도는 USB 2.0으로 충분하고 길이는 2m 이상도 무방하다
- 스마트폰 충전 위주 — 60W 기본 케이블로 대부분 해결된다. e-marker 유무를 따질 필요가 적다
- 외장 SSD 백업 — 10Gbps 이상, 길이 1m 이내. 전력 등급은 60W면 충분하다
- 도킹 스테이션·8K 출력 — USB4 40Gbps 인증품, 길이 0.8m를 기준으로 배치를 짠다
- 케이블 하나로 다 하려는 경우 — USB4 40Gbps + 240W EPR 인증품이 유일한 답이고, 대신 짧고 비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