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layHDR 400은 로컬 디밍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블랙 레벨 허용 상한이 0.4니트다. 이 두 줄만으로 인증이 보장하는 최소 명암비는 400 ÷ 0.4 = 1,000:1로 확정되는데, 이는 HDR을 표기하지 않은 평범한 IPS 모니터의 기본 명암비와 같은 수준이다. VESA가 공개한 DisplayHDR 성능 기준표의 숫자를 그대로 나눠 보면, 등급 이름에 붙은 400·600·1000이 실제로 무엇을 사는 값인지가 드러난다.
등급 이름은 피크 밝기 하나만 가리킨다. 정작 화면을 HDR답게 만드는 요소는 블랙 레벨, 로컬 디밍 방식, 전체 화면을 오래 띄웠을 때 유지되는 밝기 쪽에 있고, 이 셋은 등급마다 불연속적으로 뛴다.

숫자 400은 피크 밝기이지 화면 전체 밝기가 아니다
VESA 기준표는 밝기를 세 가지로 나눠 측정한다. 화면 중앙 8% 영역에 순간적으로 띄우는 피크 밝기, 전체 화면을 짧게 번쩍이는 플래시 밝기, 그리고 전체 화면 흰색을 30분간 유지했을 때의 지속 밝기다. 등급 이름에 쓰이는 값은 첫 번째뿐이다.
지속 밝기는 DisplayHDR 400과 500이 320니트, 600이 350니트, 1000이 600니트, 1400이 900니트로 규정돼 있다. 피크 대비 비율로 환산하면 400은 80%, 600은 58%, 1000은 60%다. 400 등급이 비율상 가장 높아 보이는 이유는 피크 기준 자체가 낮아서지 밝기 유지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밝은 하이라이트를 순간적으로 얼마나 세게 때리느냐가 HDR의 체감을 만드는데, 400 등급은 그 진폭이 애초에 좁다.
인증 기준만으로 계산한 최소 보장 명암비
피크 밝기를 블랙 레벨 허용 상한으로 나누면 그 등급이 보장하는 명암비의 하한이 나온다. 실제 제품은 이보다 나을 수 있지만, 인증서가 약속하는 최저선은 이 값이다. VESA 기준표의 CTS 1.2 수치를 그대로 대입해 계산했다.
| 등급 | 피크 밝기(cd/m²) | 블랙 레벨 상한(cd/m²) | 최소 보장 명암비 | 지속 밝기 ÷ 피크 |
|---|---|---|---|---|
| DisplayHDR 400 | 400 | 0.4 | 1,000:1 | 80% |
| DisplayHDR 500 | 500 | 0.1 | 5,000:1 | 64% |
| DisplayHDR 600 | 600 | 0.1 | 6,000:1 | 58% |
| DisplayHDR 1000 | 1000 | 0.05 | 20,000:1 | 60% |
| DisplayHDR 1400 | 1400 | 0.02 | 70,000:1 | 64% |
| True Black 400 | 400 | 0.0005 | 800,000:1 | 63% |
| True Black 500 | 500 | 0.0005 | 1,000,000:1 | 60% |
| True Black 600 | 600 | 0.0005 | 1,200,000:1 | 58% |
400에서 500으로 한 계단 올라갈 때 피크 밝기는 25% 늘지만 보장 명암비는 5배가 된다. 블랙 레벨 상한이 0.4니트에서 0.1니트로 내려가기 때문이다. 반대로 500에서 600으로 갈 때는 블랙 기준이 같아서 명암비가 20%만 개선된다. 등급 사이의 실질적인 도약은 400→500 구간과 1000→1400 구간에 몰려 있고, 500→600은 이름값에 비해 변화가 작다.
등급 이름은 밝기를 말하지만, 값을 가르는 것은 블랙 레벨이다.

로컬 디밍 없음·1D·2D가 실제로 가르는 것
블랙 레벨 차이를 만드는 장치가 로컬 디밍이다. VESA 기준표는 400 등급에 로컬 디밍을 요구하지 않고, 500과 600은 1D(엣지형 구역 분할), 1000과 1400은 2D(직하형 어레이)를 요구한다. 로컬 디밍이 없으면 화면 전체 백라이트를 한 덩어리로 밝히거나 줄이므로, 어두운 장면에서 검은 부분이 함께 들리는 현상을 구조적으로 피할 수 없다.
1D와 2D의 차이는 구역이 나뉘는 방향이다. 엣지형은 화면 가장자리에 배치된 LED를 열 또는 행 단위로만 제어하므로 밝은 물체가 있는 세로줄 전체가 밝아진다. 직하형 어레이는 격자로 나뉘어 있어 밝은 지점 주변만 살릴 수 있다. 구역 하나가 담당하는 면적이 좁을수록 빛 번짐이 줄어드는 원리는 미니LED와 OLED의 디밍존 면적을 계산한 글에서 정리한 그대로다.
| 항목 | HDR 400 | HDR 600 | HDR 1000 | True Black 400 |
|---|---|---|---|---|
| 로컬 디밍 | 요구 없음 | 1D | 2D | 해당 없음(자발광) |
| DCI-P3 커버리지 | 90% | 95% | 95% | 90% |
| 전체 화면 플래시(cd/m²) | 400 | 600 | 1000 | 250 |
| 응답 시간(프레임) | 8 | 2 | 2 | 8 |
표에서 응답 시간 항목도 눈에 띈다. 400 등급과 True Black 400만 8프레임이 허용되고 나머지는 2프레임이다. 밝기 전환이 느려도 인증이 통과된다는 뜻이라, 빠른 화면에서 밝기 변화가 늦게 따라붙는 패널이 400 등급 안에 섞여 있을 수 있다.
True Black은 왜 별도 계열로 있나
True Black은 OLED를 비롯한 자발광 디스플레이를 위해 VESA가 따로 만든 계열이다. 픽셀 스스로 빛을 내고 꺼질 수 있으므로 블랙 레벨 기준이 0.0005니트로 일반 계열의 40~800분의 1 수준으로 내려간다. 위 표에서 True Black 400의 보장 명암비가 800,000:1로 튀는 이유다.
대신 전체 화면 밝기에서 손해를 본다. True Black 400·500·600의 전체 화면 플래시 기준은 각각 250·300·350니트로, 같은 숫자를 단 일반 등급의 400·500·600니트보다 낮다. 자발광 패널이 전체 화면을 균일하게 밝히는 데 불리한 특성이 기준에 그대로 반영된 셈이다. 밝은 거실에서 낮에 쓰는 화면이라면 이 항목이 체감에 직결된다.
계열 안에서도 등급 간 성격이 갈린다. VESA는 True Black 500 등급을 소개하면서 이 등급이 600·1000과 동일한 색역·블랙 레벨·비트 심도 요건을 갖추되 휘도만 소폭 낮춘 구성이며, 초박형 소형 디스플레이에 최적화됐지만 모니터를 포함한 모든 크기에 적용된다고 밝혔다. 실제 제품에서도 계열이 갈린다. ASUS가 컴퓨텍스 2026에서 공개한 신제품 가운데 ROG 게이밍 OLED는 True Black 600, ProArt 계열은 True Black 500 인증으로 나뉘어 있다.

이런 사람에게 맞는다, 이런 사람은 기다려라
공개된 인증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는 다음과 같다.
- DisplayHDR 400 표기만 보고 HDR 화면을 기대한다면 기다려라. 로컬 디밍 요구가 없고 보장 명암비가 1,000:1이라, HDR 콘텐츠에서 기대하는 어두운 장면의 깊이가 인증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밝기가 조금 더 필요한 사무용이라면 400도 의미가 있다.
- 어두운 방에서 영화·게임 비중이 높다면 True Black 계열이 맞는다. 블랙 레벨 0.0005니트 기준이 명암비를 수십만 대 1 단위로 끌어올린다. 다만 전체 화면 플래시 기준이 250~350니트로 낮아 밝은 방에서는 손해를 본다.
- 밝은 거실이나 창가 책상이면 1000 이상을 본다. 지속 밝기 600니트 기준을 충족하는 계열은 1000부터다.
- 500과 600 사이에서 가격 차가 크다면 600을 고집할 이유는 약하다. 블랙 레벨 기준이 동일해 보장 명암비 차이가 20%에 그친다. 대신 DCI-P3 커버리지는 90%에서 95%로 올라가므로, 색 작업 비중이 높으면 이 항목이 판단 근거가 된다.
- 인증 표기 자체가 없는 'HDR 지원' 문구는 기준이 아니다. DisplayHDR은 CTS 1.2 시험 절차를 통과해야 부여되는 인증이고, 그 문구가 없으면 위 표의 어떤 하한도 보장되지 않는다.
화면 신호 규격 쪽이 궁금하다면 콘텐츠 포맷을 다룬 돌비비전과 HDR10의 차이 정리가 짝이 되는 글이다. 패널 인증과 콘텐츠 포맷은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