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청소기 스펙에서 흡입력으로 비교해야 하는 단위는 W(와트)다. 제품 상세페이지에 크게 박힌 "48,000Pa"는 흡입력이 아니라 기기 내부의 진공도이고, 진공도는 흡입력을 구성하는 두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 파이낸셜뉴스가 전한 한국소비자원 시험 결과 기준으로, 18,000~48,000Pa를 표시한 6개 제품의 실제 최대 흡입력은 58~160W였다. 같은 시험에서 W·AW 단위를 쓴 삼성전자·LG전자·다이슨은 280W(AW)급 표시 성능을 충족했다.

마룻바닥과 러그 경계에 놓인 무선청소기 헤드 클로즈업

Pa 숫자가 유독 큰 이유

세 단위는 서로 다른 것을 잰다. W는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규격이 정한 흡입일률, AW는 미국 ASTM 규격의 에어와트로 둘 다 "공기를 얼마나 빨아들이는가"를 나타낸다. 반면 Pa는 기기 안과 밖의 기압 차이, 즉 노즐을 완전히 막았을 때 걸리는 압력이다. 한국소비자원 발표 내용은 진공도를 "흡입력을 이루는 1개 요소"로 규정하며 흡입력 단위로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못박았다.

문제는 세 단위의 자릿수가 다르다는 점이다. 흡입력은 십·백의 자리, 진공도는 만의 자리로 표기된다. 공개된 표기만 나란히 놓으면 48,000이라는 숫자가 280보다 171배 커 보인다. 단위를 읽지 않으면 성능 차이로 오인하기 쉬운 구조다.

단위재는 대상근거 규격표기 자릿수시험 대상 제품 수
W (와트)흡입일률 — 유량과 압력차의 곱IEC십~백의 자리3
AW (에어와트)흡입일률 — 산출 방식 동일ASTM십~백의 자리1
Pa (파스칼)진공도 — 내부 압력차흡입력 단위 아님만의 자리6

표기 관행은 브랜드별로 갈린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W, 다이슨은 AW를 쓰고, Pa 표기는 샤오미·로보락·드리미·아이닉 등 6개 제품에서 확인됐다.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비교 가능한 단위가 통일되지 않은 상태다.

시험 장비에 달린 아날로그 압력 게이지 클로즈업

Pa만 알아도 흡입력은 계산되지 않는다

국가기술표준원이 도입하는 표준의 산출식은 단순하다. 흡입력(W)은 청소기 안으로 들어오는 공기유량(L/s)과 안팎의 진공도(kPa)를 곱한 값이다. 단위계상 1L/s × 1kPa이 정확히 1W이므로, 두 값만 있으면 흡입력이 바로 나온다. 뒤집으면 진공도 하나만 알아서는 흡입력을 알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실제로 진공도가 같아도 유량에 따라 흡입력은 몇 배로 벌어진다. 아래 표는 산출식에 진공도 4단계와 유량 4단계를 대입해 직접 계산한 격자다.

진공도 (kPa)유량 2L/s → 흡입력 (W)3L/s (W)4L/s (W)5L/s (W)
18 (18,000Pa)36547290
25 (25,000Pa)5075100125
35 (35,000Pa)70105140175
48 (48,000Pa)96144192240

표의 대각선을 보면 진공도 18kPa에 유량 5L/s인 조합(90W)이 진공도 48kPa에 유량 2L/s인 조합(96W)과 사실상 같은 흡입력에 도달한다. 진공도만 2.7배 높아도 유량이 절반 이하면 우위가 사라진다. 노즐을 막고 재는 진공도가 카펫 위에서 체감되는 성능과 어긋나는 이유가 이 곱셈 구조에 있다.

진공도는 흡입력의 한쪽 항일 뿐이다. 다른 항인 공기유량을 공개하지 않은 채 진공도만 크게 적은 스펙은 곱셈의 절반을 가린 숫자다.

실측값을 산출식에 역대입하면

소비자원 시험에서 나온 실측 흡입력을 표시 진공도 범위의 양 끝단으로 나누면, 그 성능이 나오려면 유량이 얼마여야 하는지 역산할 수 있다. 개별 제품의 진공도 표시값은 공개되지 않았으므로 18kPa과 48kPa 두 가정을 모두 대입했다.

실측 최대 흡입력 (W)280W 대비 비율 (%)48kPa 가정 시 필요 유량 (L/s)18kPa 가정 시 필요 유량 (L/s)
16057.13.338.89
8731.11.814.83
8229.31.714.56
7225.71.504.00
5820.71.213.22

비율 열이 시험 결과의 핵심이다. 실측 72~82W 구간 제품은 280W를 충족한 제품의 25.7~29.3%로, 대략 3분의 1 수준이다. 표시 진공도가 48,000Pa에 가까운 제품이라고 가정하면 필요한 유량은 1.2~1.8L/s로 떨어진다. 진공도를 높이기 위해 유로를 좁히면 유량이 줄어드는 상충 관계가 숫자로 드러나는 지점이다.

표시 성능 자체를 충족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ZDNet코리아 보도 기준으로 시험 대상 10개 제품 중 표시한 흡입력 수치를 충족한 것은 3개였다. 정격 표기와 실측이 어긋나는 문제는 표기 단위 문제와는 별개로 남아 있다.

무선청소기 손잡이 트리거를 쥔 손 클로즈업

AW와 W는 서로 환산되나

두 단위는 같은 물리량을 재지만 시험 조건이 달라 숫자를 그대로 맞바꿀 수는 없다. IEC와 ASTM은 측정 지점, 노즐·호스 장착 여부, 기준 개구 크기 규정이 서로 다르다. 공개된 스펙만으로 비교할 때 실무적으로 쓸 수 있는 원칙은 두 가지다. 같은 규격 안에서는 숫자를 직접 비교하고, 규격이 다르면 같은 자릿수 안에 있는지만 확인한 뒤 유량·먼지제거율 등 다른 항목으로 판단을 보완하는 것이다.

단위와 실사용이 어긋나는 문제는 이 카테고리에만 있지 않다. 표기 기준이 제조사 재량으로 열려 있으면 같은 숫자가 다른 성능을 뜻하게 된다. 냉장고 용량 표기에서 유효내용적이 갈리는 구조공기청정기의 표준사용면적 기준도 같은 종류의 함정이다.

KS 표준은 언제부터 적용되나

국가기술표준원은 IEC 62885-4를 기반으로 한 무선청소기 성능측정 국가표준(KS)을 제정 중이다. 표준안은 2025년 9월 18일부터 60일간 제정 예고 고시를 거쳤고, 2026년 초까지 제정을 완료하는 일정이 공개됐다. 표준이 확정되면 흡입력 표시 단위가 W로 통일되고 측정 방법도 규격화된다.

다만 KS는 임의 표준이어서 제정 자체가 곧 표기 의무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표준 제정 이후 제조사가 표기를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 기존 재고의 표기, 해외 직구 제품의 적용 여부는 각각 다르게 움직인다. 2026년 상반기까지는 W 표기와 Pa 표기가 매장에 섞여 있을 가능성을 전제로 스펙을 읽는 편이 안전하다.

서울 아파트 거실에서 무선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는 30대 남성

지금 사도 되는 사람, 기다리는 편이 나은 사람

  • 지금 사도 되는 경우 — 흡입력을 W 또는 AW로 표기하고 그 숫자가 십~백의 자리인 제품 안에서만 후보를 좁힐 수 있다면, 표준 제정을 기다릴 이유가 크지 않다. 같은 규격 표기끼리는 이미 비교가 성립한다.
  • Pa 표기 제품이 후보에 있는 경우 — 제조사에 공기유량(L/s) 값을 문의해 흡입력을 직접 곱해보거나, 시험 결과가 공개된 모델로 후보를 바꾸는 편이 낫다. 진공도 단독 수치는 비교 근거가 되지 못한다.
  • 기다리는 편이 나은 경우 — 예산이 프리미엄 구간이고 교체 시기에 여유가 있다면 KS 제정 이후 표기가 정리되는 2026년 상반기 이후가 비교하기 쉽다. 같은 제품의 표기 단위가 바뀌면서 실제 성능 수준이 드러날 여지가 있다.

참고 자료